풍월관은 강류시에서 가장 호화로운 요정으로, 뛰어난 미모의 기생들로 인해 늘 사람들로 북적이기 마련이었다. 하여 선요는 누가 풍월관 마당 앞을 뛰어다닌다 해도 그리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강류시에는 다양한 종족, 여러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누가 돌아다닌들 그리 괴이한 일은 아니었다. 그게 귀신이나 도깨비라면 또 망측한 일이라 할 수도 있을 테지만, 대낮에는 그런 게 뻔히 돌아다닐 일이 없지 않은가.
고양이와 콩은 돌아다닐 수 있더라도.
아니,
...콩?
선요는 짐을 나르다 말고 퍼뜩 고개를 들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자그마한 아이가 고양이와 함께 우다다 뛰어다니고 있었다. 콩이 아니라 아이였다. 그것도, 엄청나게 작은. 선요는 누가 이런 곳에 애를 데려왔나, 하고 대수롭잖게 생각하고서는 다시 짐을 나르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술병을 담은 상자를 드는 건 제법 집중하지 않으면 큰일이 났다. 깨질 수도 있는 위험도 위험이었지만, 허리를 다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선요는 들어온지 얼마 안 된 일꾼들이 제 힘을 오만하게 믿고선 요령 없이 상자를 들다가 허리가 나갔다며 통증을 호소하는 꼴을 자주 본 적 있었다. 그런 꼴을 보고도 아무렇게나 상자를 든다면 학습능력이 없는 멍청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선요는 그렇게까지 어리석지 않았다. 힘은 남들보다 없지만 그에겐 요령이 있었다. 상자를 안정적으로 안아들고 천천히 걷던 중이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발치에, 아까 그 작은 아이가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선요는 얼른 아이의 발이라도 밟지 않기 위해 한 걸음 뒤로 물러나야 했다.
"에구, 애기야?"
"웅!"
"오빠 지나가야 하는데. 좀 비켜줄래요~?"
눈 안에 별이라도 담긴 듯, 아이의 눈은 초롱초롱했다. 선요는 상자 너머로 아이를 보면서 사람 좋게 웃었다. 그는 아이들이 좋았다. 어린 아이라는 존재에 마냥 좋은 기억만 갖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건 굳이 깊게 들춰내지 않는 이상 선요를 괴롭게 만들지 않았다. 선요에겐 그것말고도 좋은 기억들이 많았다. 인 대인의 어린 딸을 돌보며 함께 지내는 동안 충분히 쌓은 추억이라거나, 동네의 다른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 놀았던, 꽃처럼 어여쁜 기억들 덕택이었다. 아마 그런 호감들 때문에, 일을 방해하는 작은 아이가 전혀 귀찮지 않은 것이리라.
티티 목마르다요!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외쳤다. 아마 선요가 들고 있는 상자 안의 병을 알아챈 모양이었다. 선요는 난처한 얼굴로 웃었다.
"아이, 이건 애기가 못 마시는데."
"왜~?"
"먹으면 아야해요."
"우웅."
그치만 목마르다요! 아이는 한 손에 든 지팡이를 휘두르며 시위하듯 굴었다. 선요는 목을 울렸다. 선요 말고는 이 달걀 같은 아이에게 관심을 보이는 이가 없는듯 했다. 그럼 방법은 하나 뿐이다.
"그러면 오빠 따라올래요? 오빠 얌전히 따라오면 오빠가 이 상자 내려놓구 물 줄게."
"물!"
"응, 물. 알았어요?"
"아라따요!"
아이는 만족한듯 선요가 다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는 걸 보다가 종종걸음치며 따라왔다. 아이의 뒤로는 아이보다 큰 하얀 고양이가 총총 걸어오고 있었다. 선요는 아이를 힐끔 돌아보며 생각했다. 소환사인 모양이야. 지팡이도 그렇고, 고양이도 그렇고. 이렇게 조그마한 아이가 제법이기도 하지. 그러다 선요는 린족들은 외모만으로도 나이를 가늠하기 참 힘들단 걸 재차 깨달았다. 어떤 린족들은 외모와 비슷한 나이를 갖고 있었지만, 어떤 자들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저를 열심히 따라오고 있는 작은 아이는 아마 그런 예외적인 이는 아닐듯 하였다. 뻔히 구는 태도를 보면 그랬다. 아마도 생각보다 많이 어린 아이일 터.
선요는 상자를 술창고 쪽에 내려놓은 다음에야 아이를 돌아보았다. 아이는 여전히 반짝거리는 눈으로 선요를 보고 있었다. 이제 물 주꺼야? 아이가 어눌한 발음으로 선요에게 물어왔다. 남자는 고개를 짧게 끄덕이고 다시 손짓했다. 이리 와요, 부엌 가자. 가는 길에 옷을 번잡하게 차려 입은 기생 하나가 선요를 보고 손짓하며 웃었다. 선요야, 어디서 저런 쥐방울을 달고 온 거야? 이런 데 데려와도 괜찮아? 선요는 그제야 이게 퍽 난처한 일일지도 모른단 걸 생각했다. 풍월관은 남녀상열지사가 주야로 이뤄지는 곳이었다. 춤과 노래, 음악 뿐만이 아니라 술 또한 오가는 곳. 이런 곳에 미성년자, 괜찮은가……. 선요는 속으로 탄식했다가 스스로를 위로했다. 물만 주고 내보낼 거니까요. 기생은 장난이었다는 투로 아주 긍정적인 대꾸를 던지고 살랑이며 떠나갔다.
부엌에 오자마자 선요는 작은 잔에 물을 담아 아이에게 몇 번이고 건네었다. 아이는 잔을 받아들자마자 벌컥이며 마셨고, 갈증이 좀 가시자 조금 남긴 물을 고양이에게 내밀었다. 고양이……. 선요는 부엌에 고양이를 들여도 되는가에 대해 또 고민에 빠졌고, 이번에는 답을 내리는 과정이 미궁이 아니었다. 참, 아가. 부엌에는 고양이 들이면 안 돼. 고양이에게 물을 주고 있던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 앙 대!"
"털이 날려요."
"어마는 나비가 주방에 드러가도 아무 말 안 하는데!"
엄마가 있고, 고양이 이름은 나비……. 묻지도 않았는데 아이의 신변에 대해 어째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듯한 상황이 퍽 우습다. 선요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병을 제자리에 둔 채 한 팔로 아이를 안아들었다. 뉘신진 모르겠지만 자당, 여쭤보지도 않고 자당의 예쁜 아가 안아들어서 죄송합니다아. 아이는 갑자기 시야가 높아지자 탄성을 터뜨렸다. 오오오-! 티티 놉따요! 선요는 귓가에서 시끄럽게 구는 아이가 귀여워 한참 웃음을 터뜨렸다가, 얼른 한 소리 더 듣기 전에 풍월관 건물을 나섰다. 뒤에서 경계심 가득한 울음소리를 흘리며 고양이가 그를 쫓아왔다.
건물 옆, 볕이 잘 드는 곳에 도착하자 선요는 아이를 내려두었다. 그러나 아이는 계속 신선한 윗 공기를 마시고 싶은지 선요를 자꾸 보챘다. 올려죠, 올려죠. 결국 선요는 아이를 어깨에 올려 목마를 태웠다. 아이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잘 먹고 큰 모양이지. 몸은 힘들었지만, 싫진 않았다. 아이가 무겁다는 건 사랑받았다는 증거다. 아이는 까르르 웃으면서 선요의 머리를 꽉 잡았다. 아야야, 하는 신음을 내면서도 선요는 아이에게 질문 던지는 걸 그만두지 않았다.
"애기야. 어디서 왔어? 엄마는 어디 있어요?"
"티티 농명촌에 산다요? 어마는 집에 이따요!"
녹명촌? 그곳이라면 아마 운 대륙일 터였다. 송림사 근처였던 듯한데. 운국에서 살았을 적의 기억을 되새기며 선요는 으음, 하고 얇은 신음을 흘렸다. 제법 멀리서 온 셈인데. 아마 축지 같은 것이라도 탄 모양이었다. 어쩌면 최근 축지술의 비약적인 발달로 용맥을 비틀어 빠르고 안전하게 공간이동 하는 기술까지 생겼으니, 그걸 이용한 것일지도. 그러나 어느 쪽이든 선요는 아이가 어떻게 이곳에 왔는지보다, 엄마 없이 홀로 왔다는 것이 더 심각하다는 걸 알았다.
"그럼 집에는 어떻게 가게?"
"티티 붕붕 날면 댄다요?"
"축지 타면 된다는 건가? 애긴데 축지술도 쓸 줄 알구…… 아니, 그 전에…… 여기가 어딘줄은 알아?"
"모른다요!"
…….
선요는 침묵했다. 이럴 땐 침묵이 답이었다. 아이는 특유의 어눌한 발음으로 괜찮다고 말하며 품에서 어떤 부적 하나를 꺼내어 선요의 눈앞에 마구 흔들었다. 이거를 찢으면 집에 간다요? ……눈앞에서 팔랑이는 걸 자세히 살펴보니, 녹명촌 귀환 부적인듯 했다. 아마도 아이의 엄마가 쥐여준 것이겠지. 일단은 안심이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선요는 자박자박 걸음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아가가 있는 여기는 풍월관이에요. 큰~ 도시는 강류시고. 여기는 아가 혼자 다니기에 너무 위험해."
아이는 제법 진지한 자세로 경청을 하려 들었다. 이제껏 흔들리던 다리가 멈춘 것이다. 옆으로 빼꼼 내민 얼굴을 마주하니 눈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다. 벌레를 볼 적의 고양이를 꼭 닮았다. 실제로 아이의 머리에는 까만 고양이 귀가 달려 있기까지 하였다. 고양이 좋지, 귀여우니까. 선요는 문득 고양이를 극도로 싫어하는 한 사람을 생각하고 웃음을 흘렸다. 이렇게 귀여운데 작은 털둥이들을 왜 그리 싫어하나 몰라. 아이는 빨간 매듭이 달린 꼬리를 살랑이며 재촉했다.
"티티 혼자 다니면 앙 대? 티티는 혼자서도 잘 다니는데!"
이름은 티티인듯 했다. 제법 뒤늦게서야 아이의 이름이 머리에 들어온다. 선요는 퍽 특이한 이름이라 평을 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는 너무너무 위험해요. 여기저기에 무시무시한 아저씨들이 많은데, 그 무시무시한 아저씨들이 아가를~ 엄마랑 영영 못 만나게 할지도 모른다?"
아이의 얼굴이 금세 울상이 됐다. 이거, 정말 단순한 애기네. 하긴, 이렇게 작고 아기 같이 구는 아이라면 아직 엄마 품을 채 못 벗어나는 게 분명했다. 혼자 다닐 수는 있지만, 아직 어머니에게 많이 의지하는 때. 선요는 저에게도 그런 때가 있었지, 하고 작게 웃었다. 아이는 두 팔을 붕붕 휘두르며 소리쳤다.
"시르다요-! 티티 어마랑 사꺼다요!"
"으응, 엄마랑 살려면 집에 가야지."
"그치만 티티 요기 구경하구 십다요……. 궁그마다요……. 아까 저~ 쪽에 시끌씨끌한 아줌마 아저씨들이 있었다요? 만두 냄새도 났다요……."
시장 이야기임에 틀림 없었다. 선요는 저도 모르게 옛 생각을 했다. 어미의 손을 잡고, 야시장을 갔었더랬지. 작은 사탕을 사서 먹은 적도 있었어. 만두를 사서 먹었다가, 부채질도 했었다가. 아주 특별했던 짧은 시간들. 아이에게도 그런 일이 있었을까? 물론, 지금 쌓을 수도 있다. 만두 하나 정돈 지금이라도 자신이 사줄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특별한 첫 추억이란 건, 오늘 초면인 자신보다는 엄마랑 함께 다니며 겪는 것이 더 좋으리라. 아이가 처음 할 강류시 시장 구경 같은 일이라면 더더욱.
"그럼, 오늘은 집에 가구, 나중에 엄마랑 같이 강류시에 놀러오면 되지. 오빠가 말했죠? 혼자 다니면 너무너무 위험해. 나쁜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다구. 강류시엔 또 올 수 있을 거야. 오늘 왔으니까."
강뉴시. 아이는 꼭두각시처럼 도시의 이름을 따라했다. 강류시. 선요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에게 확실히 주지시키듯 재차 말했다. 아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중에 엄마랑 같이 오면, 맛있는 만두도 마음껏 먹을 수 있을 거구, 예쁜 장식도, 애기가 좋아하는 장난감도 마음껏 살 수 있을 거야. 그치만 지금은 못 하지."
"이잉."
"이이잉. 그치, 그러니까 집에 가야겠죠?"
아이는 혼자 돌아다니는 게 위험하다는 건 아직 잘 이해하지 못한 듯 했지만, 무언가 살 수 없다는 건 확실히 인지한듯 귀를 축 늘어뜨렸다. 티티는 만두 사머그꺼야……. 그래, 나중에 엄마랑 같이 와서 사먹어. 선요는 슬그머니 티티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티티는 여태 손에 들고 있던 부적을 만지작거리다가 그럼 티티 갈래, 하고 조금은 토라진듯 말했다. 선요는 몸을 쪼그리고 아이의 눈높이를 맞추었다.
"티티, 조심히 가요? 나중에 만날 수 있다면 또 만나요. 오빠는 여기 계속 있을 거니까."
"그 때도 목마 태어주꺼야?"
"그래. 약속. 태워줄게요."
아이는 환하게 웃었다. 천진한 웃음이 마치 세신을 닮았기도 했다. 아주 순수한 기쁨으로 가득한 얼굴을 보며 선요는 손을 흔들어주었다. 티티 가께, 앙녕! 아이는 경쾌하게 외치고는 선요의 눈앞에서 북, 부적을 찢었다.
아이의 모습은 순식간에 온데간데 없었다.
그제야 선요는 허리를 쭉 폈다. 뚜둑거리는 소리가 요란해서, 그는 상체를 좌우로 움직여 몸을 풀어야만 했다. 아이가 무사히 갔겠지, 하는 생각을 하던 선요는 고개를 절레절레 털었다. 그런 생각보다는 이제 다시 일을 해야할 때였다. 그림자가 슬슬 길어지고 있었다.
소담小談 : 티티가 강류시에서 선요 목마 탄 이야기
15. 06.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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